“경제가 발전한다고 지역 발전하는 것 아니다”

“대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특성과 지역민의 입장을 고려한 정책이 수반되어야 합니다.”13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만난 박병춘 대구사회연구소 소장은 “발전에 관한 몇 가지 개념은 오해하기 쉽다”고 말문을 뗐다.그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 발전은 지역 발전으로 대체할 수 없다.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서 지역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지역 발전과 지역(산업) 개발도 다른 개념이다. ‘지역 경쟁력을 높인다’는 말에는 지역민이 입장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그는 “지역 주민의 입장이 들어가야 정말 ‘살기 좋은 대구’가 된다”며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정을 통해서 지역 발전을 꾀하는 것이 대구사회연구소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정책은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

박 소장은 “지역을 살리려면 제대로 된 ‘분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사회연구소(이하 대사연)가 지난 2002년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과 지방 분권에 관한 MOU를 체결한 것도 그 까닭이다.박 소장은 “2000년 즈음 대구사회연구소가 내놓은 ‘분권과 혁신’이라는 주제가 전국의 사회연구소에서 21세기 통합 화두로 꼽혔다”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권영길 후보는 연구소에서 발표한 분권 정책을 전면 수용하겠다고 했고, 이회창 후보는 수도 이전을 제외하고 받아들여 MOU를 체결했었다”고 밝혔다.이처럼 대구사회연구소의 주된 일은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건전한 방향으로의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파악하고, 연구를 거듭해 정책을 개발한다.그는 “2010년까지는 지방 분권이 중심이었고, MB정부가 들어선 최근 3∼4년은 신자유화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하고, 교육과 의료주거실업노후 등 5대 민생문제가 사회의 중요 이슈로 두드러지면서 대안 정책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사연은 지난 2009년 대구경북사회적기업지원센터를 부설기관으로 창설했고, 이어 낙동강 고용촉진벨트추진사업단을 창설했다. 현재 지역의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대안으로 꼽히는 사회적 기업의 육성, 마을기업 지원 등도 초창기 대구사회연구소에서 싹을 틔웠다.

◆대구 유일 민간종합정책연구소

대구사회연구소의 역할은 정책 제안뿐 아니다. 지난 1992년 문을 연 이래 대사연은 지역 동향 분석, 연구 프로젝트, 자료집 출판, 시민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20년간 지역실태조사만 20여회로, 정책토론회와 세미나는 124여회에 달한다. ‘분권과 혁신’이라는 주제로 대사연이 진행한 세미나는 14차례. 12차례에 걸쳐 경북대학교와 공동으로 진행한 포럼은 2권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다.대사연은 출판 작업에도 충실하다. 연구 성과를 알려 지역민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다시 현장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인 탓. 현재까지 10여권이 넘는 연구총서와 보고서가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성과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매달 ‘대구경북 지역동향’을 출판, 6년간 통산 70호 넘게 발간하기도 했다.박 소장은 “정책 제안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가 선행되는 것”이라며 “지역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경우에 따라 현장에 직접 나서 정책을 시험하기도 한다”고 전했다.현재 대사연의 상근 연구원(석사학위 이상)은 70여명으로, 교수 및 회계사,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교집합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평소 자신의 직업 활동을 병행하다가 연구소에서 수탁 과제 또는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연구진을 꾸리면 해당 분야 연구원으로 참여한다.민간연구소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이다. 최고 수준 전문가들이 인원수와 기간 면에서 능동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고, 연구 과제에 한계가 없다.박 소장은 “대구시엔 대사연 외에도 정책연구기관이 있지만, 정부에서 기금을 출연받으면 연구 과제 선정에 제약을 받기 쉽다”며 “솔직히 정부기관이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중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전문직의 사회적 책임은 의무다

“푸트남(Putnam)이라는 정치학자가 이탈리아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신뢰’도 사회적 자본이라 거죠.”박병춘 소장은 똑같은 정책과 똑같은 자원을 투자해도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정책의 효과는 신뢰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달렸다는 것. 그는 정책 실현을 위해선 주민 참여가 필요하고, 학자 역시 연구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선 실리콘 밸리나 스탠퍼드 등 대학이 나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은 사회 기여도가 낮다”며 “대사연의 모태인 지방사회연구회도 초기엔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 모임이었지만, 연구만으로는 소용없다는 생각에 연구소로 재창립한 것”이라고 말했다.현재 소장직을 맡은 그의 다른 직함은 계명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다. 대사연의 창립 회원으로 20여년간 연구에만 몰두해왔지만, 지난해 3월부터 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소장임기가 2년인데, 2년은 내 능력과 열정을 사회를 위해 쓰겠다고 생각했다”며 “재능환원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혜택을 많이 받는 전문직(교수)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소장직을 수락하고 나서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일이라고. 그는 “대구는 전통적인 소비도시다. 대규모 예산을 위해 국책사업을 따오는 것도 좋지만, 무조건 제조업 쪽 사업을 시행하면 안 된다. 전국적인 소비도시인 강남을 봐라. 부(富)로 손꼽히지만, 공장을 세워서 발전한 것은 아니다”며 “대구의 발전을 위해선 ‘변화’도 필요한데, 취지를 설명해도 덮어놓고 백안시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덧붙였다.박 소장은 “대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지역발전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며 “지금은 폐쇄성을 털어내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대구일보 정혜윤 기자 (2012. 09. 20)hyeyo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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