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후보 苦戰하는 진짜 이유는 '과거와 미래 대결' 구도기 때문
경제 민주화 운신 폭 넓지 않고 안보와 외교 리더십 검증 안돼
권위주의, 상층부 부패 우려도 '미래 對 미래'로 바꿔야 산다
18대 대선은 여권에 한바탕 난전(難戰)이 될 것 같다. 박근혜 대세론은 허공에 흩어진 지 오래다. 양자 대결 구도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뒤지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는 엎치락뒤치락 중이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민심의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설령 범야권 후보 단일화 없이 박(朴)·안(安)·문(文) 3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져도 박 후보의 낙승(樂勝)은 쉽지 않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가 훨씬 많은 데다 이들이 최후의 순간에 안(安)·문(文) 중 1인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야가 총력전으로 맞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선거 지형(地形)에서 박근혜 후보와 보수 진영이 온 힘을 기울여도 초박빙(超薄氷) 싸움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과거사 관련 박 후보의 실언(失言)과 측근들의 연이은 비리를 박 후보가 고전(苦戰)하는 이유로 본다. 그러나 이는 현상적 진단일 뿐이다. 근본적 원인은 선거 구도가 점점 '과거와 미래의 대결'로 짜이는 데 있다. 과거를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박근혜 후보가 미래를 대표하는 인물로 간주되는 안철수 후보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한국 사회같이 역동적인 공간에서 과거가 미래를 당해내긴 참으로 어렵다.
물론 박 후보에겐 강력한 고정 지지층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제외하곤 줄곧 한국 현대사의 주도권을 장악해온 보수 진영의 객관적 힘이 그녀를 강고(强固)하게 떠받치고 있다. 어느 경우에도 40%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지지도가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박 후보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란 정치적 자산 덕에 안정감이 돋보인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실적도 있다. 그럼에도 박 후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대통령 박근혜가 다스리는 세상'이 평범한 민초(民草)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 비록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약속했지만 전 지구적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운신 폭은 넓지 않다. MB 정부의 신(新)발전 정책을 닮은 5년 전의 박근혜 표 '줄·푸·세' 정책을 별다른 해명도 없이 정반대의 경제 민주화로 바꾼 데서 엿보이듯 '대통령 박근혜'는 언제든 다시 재벌 중심 경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박정희식 불균등 발전 전략의 경로 의존성이 '경제 살리기'의 이름 아래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아버지 박정희'와의 절연(絶緣)을 '대통령 박근혜'의 경제적 상상력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 결과 사회 양극화가 위험 수준으로 치닫는 데 비례해 국민 통합의 길은 멀어진다.
둘째, 정치 영역에서도 '대통령 박근혜'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일 개연성이 높다. 정치 이력 내내 불통(不通)의 혐의를 받은 데다 선거 캠프 안에서조차 수평적 소통과 내부 비판이 눈에 띄지 않을진대 막상 대통령이 된 후엔 어떻겠는가. 만기친람(萬機親覽)의 통치자가 독주하면서 극소수의 측근들과 친·인척이 공조직을 무력화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넘어설 민주적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을 박근혜 후보는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셋째, 국가 안보와 외교 분야에서 박 후보의 리더십은 검증되지 않았다. 미국의 쇠퇴, 중국의 부상, 일본과의 갈등이 겹치는 가운데 북한발(發) 위기를 관리하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선 비스마르크나 키신저 수준의 지혜로운 국가 대(大)전략이 요구되는바 박 후보가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넷째,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권력 상층부의 부정부패다. 물론 '대통령 박근혜'는 공공 정신에 투철하지만 친박(親朴) 측근 사이에서 부패가 먹물처럼 번지는 현실이 입증하듯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박 후보를 둘러싼 인적자원의 다수가 과거의 인물이라는 점이 이런 우려를 정당화한다.
이처럼 경제·정치·국가 안보와 외교·사회 분야에서 '박근혜 스타일'은 과거의 틀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식 리더십은 과거에 한시적으로 유효했을 뿐 21세기는 21세기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민주 다원사회는 '대통령 박근혜가 국민을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 박근혜와 함께 가는 세상'을 요구한다. 박 후보는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라는 대선 구도를 '미래와 미래의 경쟁'으로 바꿔야만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자신과 주변을 일신(一新)하지 않는 한 박근혜 후보의 승리는 무망(無望)하며 스스로의 역사적 책임을 다할 수도 없다.
(참고) 상기 글은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가 2012. 10. 04 "사외칼럼"으로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같이 생각해 볼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되어 게시판에 올립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4/2012100400933.html?news_Head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