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회연구소

세월호 참사는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안전규정도 무시하는 파렴치한 기업가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지난 산업화시대에 형성된 정경유착 관행이 독버섯처럼 사회 각 분야로 퍼진 결과로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생때 같은 어린 생명을 눈앞에서 뻔히 보고도 귀중한 구조시간을 다 날린 상황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다.

집권여당과 정치권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만큼 이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소비침체가 지속되고 경기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보상을 서두르고 사고수습을 하루 빨리 마무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참사로 희생된 국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권과 국민은 사실규명이 될 때까지 이를 감내해야 한다.
세월호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다. 심각한 국가운영시스템의 오류로 발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운영방식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사실규명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국민적 피로감을 이유로 덮어버린다면 국가운영시스템을 개조할 기회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이후 유사한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그 충격으로 인해 아노미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국가개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재난 발생의 원인과 함께 재난 발생 이후 정부가 보여준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대응한 원인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초기 구조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결단력 부재도 문제지만 현장중심의 정부대응시스템 부재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이는 권력초집중체제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중앙정부에 모든 결정권이 집중됨으로써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촌각을 다투는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정부가 국가안전처를 신설해서 재난 관리와 대응체계를 일원화한들 현장에 결정권이 없는 한 신속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결정은 광화문 청사 대책본부에서 하고 집행은 사고현장에서 하는 비정상의 극치를 보여줄 뿐이다.

결정권이 국민이 살아가는 현장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전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로 중앙정부가 실효성 있는 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서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고 지역사회의 합의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용 분야의 경우 고용 정책과 사업 기획, 재원과 기금 운영은 세종청사에서 결정하고 지방정부는 정부고용사업에 예산을 매칭하고 관리하기에 바쁘다. 지역사회의 합의에 바탕을 둔 고용정책을 추진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지방정부가 고용정책을 독립적으로 추진할 권한과 재원이 없어 지방정부 또한 지역민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지방정부가 실권이 없고 지역민의 의사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지 않은 채 중앙정부의 구상대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모든 문제는 현장과 지역에서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 역시 현장과 지역이다. 재난과 재해가 발생하든, 고용과 복지를 증진하든 현장과 지역에서 신속한 대응을 하고 필요한 행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현장과 지역이 결정권을 가지는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지방분권국가 실현이 국가개조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