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 간사 박선미
대학원 시절 녹색평론을 접하며 생태문제로 인한 환경난민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러던 중 몽골 생태 여행을 준비하고 참여한 소중한 경험이 있다. 몽골 울란바트르에 도착한 첫날 후각으로 느꼈던 몽골의 바람과 공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몽골 초원에서 맛보았던 음식의 맛과 환경난민으로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의 삶의 모습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몽골의 유목 체험을 위해 북쪽 다르항 인근의 초원을 향했다. 드넓게 펼쳐진 몽골의 초원에 게르가 드문드문 나타나는데 강과 초원의 풀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두, 세 가정이 초원에서 생활한다. 그렇게 몽골 초원을 달려 부부와 어린 두 자녀가 함께 살고 있는 게르에 도착했는데 당시 게르에는 울란바트르 시내에 사는 친구 부부와 두 자녀가 휴가 차 머물고 있었다. 내가 머물게 된 게르는 주인집의 4인 가족과 친구 가족의 4인, 나와 통역을 해주는 몽골인 친구 총 10명이 함께 재미난 동거를 하게 되었다.
게르의 안주인은 제일 먼저 우유에 찻잎을 끊어 만든 수테茶를 나와 통역을 도와주는 친구에게 대접해 주었다. 몽골 초원에서 처음 맛본 수테茶는 우유의 텁텁한 맛은 사라진 뜨겁지 않으면서 온기가 남아 있는 맛이었다. 초원의 게르에서 지낸 짧은 시간동안 가장 많이 먹은 것이 수테茶와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 그리고 말린 양고기이다. 몽골의 유목민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먹는 것이 수테茶인데 아침 일찍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한 나에게 게르의 아주머니가 수테茶에 양고기와 밥을 말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이 귀한 초원에서 수테茶는 마시는 물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몽골 음식의 기본이 된다.
물이 귀한 몽골의 초원에서는 매일아침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린 여자아이는 작은 컵에 물을 담아 주며 그 물로 세수와 양치를 하라는 몸짓을 해주었는데, 당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물이 귀한 초원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게르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샤워를 한번도 하지 않았고 사실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지냈다. 아침 일찍 옆 게르의 할머니는 작은 컵에 물을 담아 게르를 한 바퀴씩 돌며 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는데 통역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물을 한 방울씩 떨어트리며 가족과 가축의 안전을 기원하고 초원의 모든 생명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반사막기후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물은 소중하고 신성한 것이 분명하다.
몽골에서 수테茶는 건조한 반사막기후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수테茶는 유목민에게 갈증을 해소하고 초원에서의 생명을 유지하는 지혜의 음료이다.그래서 몽골의 어머니들은 가족들을 위해 항상 수테茶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수테茶는 집집마다 그 맛이 다른데 아마도 그 맛의 차이는 집집마다 다른 몽골 어머니의 손맛이라 생각된다. 수테茶는 양이나 염소의 젖에 찻잎을 넣어 끊인 후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몽골의 풍습에는 결혼한 새 신부가 수테茶를 잘못 끊이면 시어머니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 게르에서 생활하는 동안 수테茶를 끊이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초원의 손님을 언제나 환대한다. 환대에는 그 어떤 조건도 따르지 않는다. 대가도 없다.
생태위기 속에 몽골의 초원은 극심한 가뭄으로 초원이 사라지고 수도 울란바트르에는 환경난민이 늘어나고 있다. 초원은 점점 사막으로 변해 가고 초원의 동물, 사람, 식물들의 생명이 위태롭다. 가축의 떼 죽음으로 생계가 어려운 초원의 유목민들은 도시 빈민이 된다. 몽골 초원의 사막화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황량한 초원이 몽골만이 아니다. 청도 삼평리 할머니들의 생명,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생명, 잘못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흐르지 않는 강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생명이 위태롭다. 그야말로 황량한 초원이다.
누가 우리에게 황량한 초원에서 생명을 지켜주고 조건없이 반겨주는 게르의 안주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초원의 안주인이 만든 따뜻한 수테茶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