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이사 박병춘(계명대학교 경영공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 자체도 야만적이지만 그 수습 과정을 보면 우리는 참 야만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 역대 어느 시절보다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반면 경제 규모에는 걸맞지 않게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시대착오적인 봉건적 권위의 잔재들이 널려 있어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며,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로의 진전을 억압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과 정보·조직·자금을 갖고 있으며, “이권”을 매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패 수구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기득권을 유지·확대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후손들에게 상속하는 데에는 모순된 사회구조를 유지 혹은 확대 재생산하는 것만큼 더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특권 구조가 없어지기 어려운 이유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도, 이것의 원만한 수습을 어렵게 하는 것도 바로 이 특권구조 때문이라 하면 너무 지나친 주장일까?
Langewiesche에 의하면 사고는 다음과 같이 3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절차적 사고이다. 가장 흔한 사고 유형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공인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결과로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이 사고 유형은 절차들 중 한 절차의 집행자 혹은 집행자들의 실수에 기인하는 사고로, 절차 자체의 잘못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둘째는 공학적 사고이다. 설계상의 결함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로, 설계자의 실수에 기인한 사고를 말한다. 셋째는 시스템적 사고이다. 이해하고 통제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고로, 대규모 시스템에 적용되는 아주 복잡한 기술이나 그 운영에 필요한 복잡한 조건들이 상호 작용하여 일어나는 사고이다. 이 사고를 일으키는 실수의 특징은 조그마한 실수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잦은 실수 혹은 실수의 연발이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구조적 모순과 부패가 쌓이고 쌓이다 그 임계점을 넘었을 때 발생하는 대형 참사가 좋은 예로, 세월호 참사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세월호 참사는 기본이 안된 우리 사회의 민낮을 가감없이 들어낸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 여기까지는 집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박근혜 정부에게 전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같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습과정이다. 이 부분은 현 정부, 직접적으로 말하면 현 정부를 조직하고 책임자들을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간사 조원진 의원의 8월 13일자 국회 브리핑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에 대한 오전 10시 안보실 서면 보고를 시작으로 안보실로부터 서면 3회·유선 7회, 비서실로부터 서면 11회 등, 모두 21회에 걸쳐 서면과 유선으로 상황을 보고받았다 한다. 문제는 당일 대통령은 외부 행사가 없어 줄곧 청와대 경내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내에 있는 대통령이 그 급박한 상황에서 참모진들과 함께 공동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주로 일방향 서면 보고에만 의존하여 지시하였다는 사실, 이런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 낡은 시스템과 관행은 앞으로의 더 큰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사건 초기 여론이 악화되고 지지도가 급락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감을 통감하는 듯하다 6.4 지선과 7.30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지지도가 올라가자 태도를 돌변하였다. 유족들을 만나 위로하는 것도, 실효성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도,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시스템을 개혁하고 정비하는 것도,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 속에서 국가의 안위를 담보하기 위해 적폐를 청산하고 활력있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애써 외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유가족들이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 억울한 원혼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이런 유족들의 요구가 실현 가능하도록 제정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사고희생자·실종자·생존자및가족대책위원회가 협의해 만든 4·16 특별법에 의하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유가족들의 핵심요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4·16참사특별위원회'를 국회와 피해자 단체가 동수로 추천하여 구성한다. 둘째, 이렇게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독립된 국가위원회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4·16참사의 직간접적·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며, 재난 방지 및 대응책을 수립한다. 여기서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해당 상임위원은 조사 사건에 한해 '독립적인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갖도록 한다. 즉, 특별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이것을 거부하는 논리는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발상이며, 입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부 논리를 뒤집어 보면 유가족들의 요구가 우리사회의 특권구조를 침해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디 감히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민간인 유족 따위들이 하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국가가 한 일은 온 나라를 뒤집어 유병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밖에 없는 듯하다. 만약 유병언이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원흉이라면 유병언이 없는 지금 우리는 좀 더 안전해졌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불신을 받고 있고, 유족들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은 단지 유가족들에 대한 동정과 이해를 넘어 관피아 등으로 상징되는 특권구조를 일소하고 밀린 적폐를 청산할 의지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앙 앞에서도 우리가 달라질 것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미래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